진목정성지
 



허인백(許仁伯)
야고버

-1822~1868년
1822년 경상도 김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언양으로 이주해 살았다.
그러다가 25세 때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고 입교하였으며,
이후로는 아주 열심히 수계 생활을 하여 교우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아내 박조이와 자식들에게도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정결을 지키기위해 아내와 남매처럼 살았으며, 고신극기와 애긍에 힘써 가난한 이와 병든 이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1860년 경신박해가 일어난 뒤 그는 체포되어 무수히 매를 맞고 언양으로 끌려가 여러 가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천주교 신자임을 떳떳하게 고백하였다.
옥에 갇혀 50여일을 지낸 뒤 경주로 이송되었으며, 8개월간 옥에 갇혀 지내다 박해를 중단하라는 임금의 명에 따라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후 그는 울산의 죽령(현 경남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산중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양등 회장과 김종륜을 만나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고, 나무 그릇을 만들어 팔아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는 묵상을 게을리 하지않았고 자주 순교 원의를 드러내곤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2년 뒤인 1868년에 경주시 산내면 소태동 단산골에서 체포되어 경주로 끌려가게 되었다.
경주 진영에서 문초 후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이곳 장대(將臺, 현 경남 울산시 병영동)로 끌려 나가 이양등 회장과 김종륜과 함께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님과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아내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


김종륜(金宗倫)
루카

-1819~1868년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충청도 공주에서 천주교에 입교한 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경주요, 족보 이름은 ‘경희’(敬熙)이다. 루카는 평소에 특히 화목함을 강조하였고, 어느 누구와도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였다.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부모를 모시고 경상도 상주 멍에목(현 경북 문경군 동로면 명전리)으로 피신하였다.
다시 언양 간월(현 경남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교우촌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죽령 교우춘에서 그는 이양등(베드로) 회장과 허인백(야고보)을 만나 서로 권면해 가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68년에는 그는 그곳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는 몸이 되었다.
그는 경주 진영에서 굳건하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어 루카는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어 장대(將臺, 현 경남 울산시 병영동)로 끌려 나가 이양등 회장과 허인백과 함께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


이양등(李陽登)
베드로

-?~1868년
경상도 울산의 죽령 교우촌(현 경남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회장이었다.
본래 성품이 선량하였던 그는 꿀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열심히 수계 생활을 하였다.
그 후 그는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죽령 교우촌으로 이주해 온 허인백(야고보)과 김종륜(루카)을 만나 서로 권면해가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2년 뒤인 1868년 포졸들이 마침내 죽령 교우촌을 찾아내게 되었고, 베드로는 그곳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는 몸이 되었다.
그는 경주 진영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게되자 굳건하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어 장내로 끌려 나가 허인백, 김종륜과 함께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